아름답지만 슬픔을 간직한 섬 소록도와 함께 합니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기원은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1910년 세운 시립요양원에서 시작되었다.
1916년에는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 개원하였다.
[사진] 1916년 2월 24일 조선총독부령 제7호로 한센병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병원[소록도 자혜의원] 설립

일제강점기에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분리·수용하기 위한 수용시설로 사용되면서,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로 수용되기도 하였다.
당시 가혹한 학대가 자행되었으며, 강제 노동과 일본식 생활 강요, 불임 시술 등의 인권 침해와 불편을 당했다.
[사진] 중앙공원 건설을 위해 큰돌을 운반하기도 하고, 벽돌공장을 운형해 강제로 노동을 착취했다. 불편한 몸으로 나무를 베고, 불을 지피는 과정에서 화상을 당해 더 큰 병과 고통에 시달렸다. 그로 인해 목숨을 걸고 탈출을 감행하는 일도 빈번했다.

소록도 환우들은 사망하면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모두 해부절차를 거쳤으며, 모두 화장한 후 납골당에 유골로 안치되었다.
소록도의 "3번 죽는다"라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첫 번째는 한센병 발병, 두 번째는 시신 해부, 세 번째는 화장이다.
[사진] 검시실(또는 해부실) 해부실로 사용된 공간으로 안쪽방은 영안실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건립년도 1935년도]

소록도 안에는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 생활의 실상을 보여주는 소록도 감금실과 한센병 자료관, 소록도 갱생원 신사 등 일제강점기 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역사적 건물과 표지판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사진] 감금실 내, 외부 전경. 덩그러니 방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재래식 화장실. 최소한의 안간으로서의 대우조차 보장받지 못했던 현장이다.

소록도 병원은 해방 후에도 한센병 환자의 격리 정책을 고수하여 환자 자녀들이 강제로 소록도 병원 밖의 학교에서 공부해야 했다.
이후 한센병에 대한 연구가 전척되고,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한센병 치료 및 연구, 요양 재생 등을 기본 사업으로 하는 요양시설로 바뀌었다.
[사진] 아이들을 격리시키고 경계선 도로 양편에서 한달에 한 번 면회를 허용하는 장면. 서로 만지거나 안아볼 수 조차 없었으며, 자녀는 바람을 등지고 부모는 바람을 안고 면회했다고 한다.
또한 1965년 부임한 한국인 원장으로부터 과일 농사, 가축 사육 등의 기술을 익혀 스스로의 힘으로 살 수 있도록 배려를 받았으며, 일부는 소록도 축구단을 결성하여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완화하였다.
소록도는 전체가 국유지로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지정돼 있다. 주민 대부분은 국립소록도병원의 직원 및 전염력을 상실한 음성 한센병 환자들이다. 또한 환자의 대부분은 65세를 넘긴 고령자다. 환자들의 주거 구역은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다. 병원 직원 등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거주하는 관사지대(소록리 1번지)와 환자들이 거주하는 병사지대(소록리 2번지)로 나뉘며 병사지대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삼림과 해변이 잘 보호되어 있어서 정취가 뛰어나며 섬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길이 잘 닦여 있다. 우체국 도양읍 소록지소 등 관공서와 천주교회, 개신교회인 소록도교회, 원불교당 등의 종교 시설, 녹동초등학교 소록도분교 등 교육시설도 있다.
2007년 9월 22일부터 5일간 고흥반도와 소록도를 잇는 1160m의 연륙교 소록대교가 임시개통하여 육상교통로가 열렸다. 2009년 3월 3일에 정식 개통했다.
참고 : 위키백과